평소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기도 하지만 제목에 확 끌린 책이에요.
<고양이와 시>
제가 사랑하는 두 단어가 합쳐진 제목이라뇨.
게다가 아침달에서 나오는 산문 시리즈라니.
읽지 않을 수 없었지요.
시와 고양이, 고양이와 시.
제게는 둘 다 너무 사랑해서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쉽게 허락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시도 고양이도 부르면 당장 오지 않는다. 다가서면 달아나기 때문에 내가 어디에, 어떻게 머물러 있는지 훤하게 들추는 주소다.” 시인이 프롤로그에 적은 글인데요. 이 문장을 읽고 이 책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지혜의서재에서 함께 읽어요 :)
옆이 아닌 곁을 나누며
서로의 풍경으로 익어가는 고양이와 시
생활 속에서 탐구하는 테마와 시를 나란히 두고, 시와 생활이 서로를 건너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침달의 새로운 에세이 시리즈 <일상시화>. 첫 번째 순서로 서윤후 시인의 『고양이와 시』가 출간되었다. 여러 시집과 산문집을 펴내며 활발히 활동해온 시인은 어느덧 등단 15년 차가 되어 세 살 고양이와 살아가는 시간을 톺아 써온 날들, 함께한 날들을 무구히 돌아본다.
『고양이와 시』는 삶의 풍경을 구성하고 있는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시인은 반려묘 곁에서 오늘의 시를 찾고, 무언가를 쓰는 동안 뒤돌아 고양이의 인기척을 틈틈이 확인한다. 그 둘과 함께 걷는 길엔 돌아봄과 중얼거림이 잦지만, 그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우뚝 선다. 서로를 부축하며 사랑의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여정이 스물여섯 편의 산문과 네 편의 시로 담겼다.
서로의 행간에 기꺼이 빠지는
사랑의 구체적인 이름에 대하여
사랑에 빠진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 설렘이 전부인 날들을 거쳐 점점 편안함에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우리는 다양한 감정의 다리를 건넌다. 사랑은 우리에게 마침표같은 확신을 주곤 하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말줄임표로 우왕좌왕하게 만든다. 서윤후 시인은 사랑의 모호함과 불확실성에 고양이와 시를 슬며시 끼워 넣는다. 그 둘이 만든 문법 속에서 그는 확신의 착각 속에 살기도 하고 막연함에 빠지기도 하며 명쾌하게 기뻐하기도 하고 무표정을 짓기도 한다.
“알 것 같으면 쏜살같이 달아나고, 보이지 않을 땐 불쑥 나타나 나를 헤집어놓는 시간 속에서, 나는 언제나 우왕좌왕이었다.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는 형세였지만, 그마저도 좋은 것이 사랑의 일과라면, 어쩌면 나는 오래도록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다.”(14쪽)
시인이 시를 쓰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타인의 권유에 등 떠밀려서도, 번뜩이는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중학교 교내 백일장에서 집에 일찍 가기 위해 유독 호흡이 짧았던 시를 선택한 것이 계기라면 계기였다. 그 이후 지금까지 쭉, 시를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처럼 사랑은 말도 없이 다양한 문장부호를 만들고, 우리는 그가 만든 문법에 사로잡히게 된다. 시작점을 모르기 때문에 배울 수 있고, 배움으로서 계속할 수 있는 확신이 생긴다. 그것이 시 쓰기든, 일이든, 사랑이든.
시는 곧 시인의 일상 반경 어디서든 자리하게 된다. 습관화되고 일상화되면서 시와 더 가까워지고, 그는 전보다 더 자주 독백체로 중얼거리며 사물과 상황에 진득한 의미부여를 하기도 한다. 일상의 이러한 작은 이변은 모호했던 그의 삶을 명쾌, 해방, 기쁨 등으로 구체화하여 명명한다.
“나는 내 삶에 대해 명쾌하게 말할 수 없어서 시를 쓰기 시작했고, 시는 모르는 기쁨이나 해방감 같은 것을 물어다 주었다.”(18쪽)
고양이가 읽는 나, 내가 쓰는 고양이
서로를 향한 소리 없는 낭독
시인은 자신의 일상 반경에 시와 고양이를 둔다. 모르기 때문에 멋대로 착각하기도 하면서 꾸준히 그 둘레를 걷는다. 고양이를 키우게 되면서 자기 자신에게만 들리도록 내뱉는 잦은 혼잣말에도 고양이는 시인의 곁을 맴돈다. 시인 역시 고양이의 작은 인기척에도 뒤돌아 그의 행보를 살핀다. 혼자의 시간을 존중해 주면서도 혼잣말로는 두지 않으려는, 이 미묘한 거리 두기 속에서 어떤 안전한 확신이 생겨난다. 나지막이 고양이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기지개를 켜고 앞발로 스크래처를 긁는 일 사이에서 이뤄지는, 서로를 향한 무해한 틈입은 더 많은 사랑의 고백을 만들어 낸다.
때때로 시인에게, 사랑은 행간에 ‘기꺼이’ 빠지는 일처럼 보인다. 행간은 시가 적히지 않는 공간을 말한다. 시인의 고양이 ‘희동’은 집 안의 행간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그의 진심은 그가 쓴 시의 행간에 맺혀 있다. 구석구석 사람 눈길 닿지 않는 곳에 숨어버린 고양이를 찾다 지쳐 집안 한가운데 멈춰 서보는 일처럼, 시의 행간에 기꺼이 잠시 고요히 멈춰서 봄으로써, 그다음과 그 전의 문장을 한 깊이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설령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그들 앞에 우뚝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함으로써 내 마음의 노선을 면밀히 할 수 있게 된다.
“나의 행간에는 보이지 않는 물방울들로 가득하다. 아무것도 없다고 불쑥 발을 내밀었다가 물거품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그 물거품으로 깨끗하게 씻어낸 얼굴로 다시 종이 위에 적힌 것을 읽어볼 수 있다. 행간에 빠져본 사람만이 읽을 수 있는 것이 시에 맺혀 있다. 구석구석 숨어버린 고양이를 찾으며 나도 모르게 알게 되는 공간이 주소를 지니는 것처럼.”(85쪽)
『고양이와 시』는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부터 사랑을 이해하고, 그 사랑을 지키며 사랑하는 것들과 함께 또 다른 계절과 시절의 풍경을 만들어 간다. 계속해서 마주할 풍성한 현재를 위해, 시인은 계속 우왕좌왕하며 돌아보고 기다리면서 그 동행에 기꺼이 발을 빠뜨릴 것이다.
저자소개
서윤후
990년에 태어나 전주에서 성장했다. 2009년 《현대시》로 등단했으며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휴가저택』, 『소소소 小小小』,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와 산문집 『햇빛세입자』,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 『쓰기 일기』 등을 펴냈다. 제19회 〈박인환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2022년생 코리안 숏헤어 고양이 ‘희동’이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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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