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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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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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이 스치는 도시에서

내일의 과거로 걷는 산책자가 빌딩과

 

2009년 《문학수첩》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심장에 가까운 말』, 『한 사람의 닫힌 문』, 『있다』, 최근 출간한 『수옥』을 내며 15년 동안 성실히 시대와 타인의 아픔을 독보적인 감수성으로 노래한 시인 박소란의 첫 산문집 『빌딩과 시』가 <일상시화> 시리즈에서 출간되었다.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도시적 서정성을 지닌 시인은 이번 책을 통해 ‘빌딩’이라는 테마를 경유하여 도시에서 경험한 일화들과 시 쓰기에 대한 태도를 솔직한 언어로 말한다.

도시에는 가만한 모습으로 빌딩들이 높이 솟구쳐 있다. 빌딩이라는 세계는 내 몸을 품기에 지나치게 크기도 하다. 우리는 빌딩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머무는’ 존재이므로 빌딩과의 관계는 언제나 임시적이고 빌딩 자체도 늘 견고하진 않지만, 나의 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공간이므로 삶 전체가 투영되는 상징이 된다.

 

“문 저편에서 펼쳐지고 있는 온기가 선연하다. 그 온기 속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기척, 그런 걸 듣는 일이 좋다.”(「사람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부분)

 

빌딩과 빌딩 사이를 가르는 밤의 거리에서 시인이 가진 유일한 취미는 ‘걷는 일’이다. 시인 박소란은 하염없이 걷고 또 걷는다. 화창한 낮엔 천변이나 인근 대학 운동장을 걷는다. 밤이 오면 집집이 밝힌 빛들 속에서 온기를 두른 사람들이 모여 내는 기척들이 더욱 잘 들린다. 시인은 밤에 산책하면서 어둠과 고요 속 가장 작은 빛과 소리를 감지하는 자이다. 시인은 밤에 더 잘 본다. 시인에게 걷는 일은 늘 무언가 보고 들으려는 의지가 된다. “사람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시인 박소란은 항상 사람의 편에 서서 사람을 본다.

 

불가능한 사랑의 재건축

속에서 무수히 변주되는 사각형 상자

 

얼핏 보면 닮은 구석이 별로 없어 보이는 빌딩과 시는 밤마다 산책하기를 좋아하는 시인의 부지런한 발걸음을 통해 공통된 의미를 새롭게 획득한다. 예컨대 빌딩과 시 모두 ‘사람’이 드나드는 장소라는 점이나 언어를 담는 시의 형질은 어떤 시절로 기록되어 ‘사각형’ 백지에 담긴다는 점이 그렇다.

 

시인에게 빌딩은 비단 임대 사무실이 많은 그런 건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이 살고, 살았다면 어디든 빌딩이 될 수 있다. 작은 빌라인 집, 유리, 가지런히 놓인 봉안묘와 봉안담, 테트리스, 추억과 이별, 그리고 시까지. 직조된 사각형 안에 사람이 머물 수 있다면 모든 것이 빌딩이 된다.

 

“나는 결코 그 상자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 알 수 없다. 내가 모르는 세계가 거기 있다는 것.”(「어떤 방」 부분)

 

죽음을 담은 빌딩 속은 산 자가 볼 수 없다. 시인조차 끝내 볼 수 없는 것은 한 사람의 죽음이다. 하지만 오히려 시인은 죽음으로 들어찬 빌딩들이 나란한 용미리에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오고 싶다고 말한다. 그곳에서도 나들이를 나온 가족이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고 아이들이 뛰논다. 이렇듯 시인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고 흐릿하다는 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다시 빌딩 가득한 도시로 돌아와 삶 속에서 무수히 변주되는 사각형을 보며 걷는다.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려는 불가능한 사랑을 사각형 마음으로 재건축한다.

 

“내 마음은 그가 여전히 거기 있다고 일러주었다. 바로 그 크고 단단한 세계에. 사랑한 모습 그대로. 굳건히 선 빌딩, 그 하나만이 우리가 나누었을 시간의 증거가 되어주었다.”(「후경」 부분)

 

시인 박소란이 바라보는 대상은 늘 뒷모습을 취하고 있다. 그것은 시인이 걸음이 느리다거나 일부러 뒤에 있기를 자처해서가 아니다. 시인은 사람과 끝까지 함께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후경(後景)을 사랑한다. 눈앞에 놓인 세계보다 더 멀리, 끝내 문을 열지 못하더라도 이편에 서서 저편에 있는 또 다른 빌딩을 드나들며 새로운 삶을 살아갈 존재들을 기억한다.

 

 

 

 

 

 

 

 

 

 

 

 

 

 

 

 

 

 

 

 

저자소개

 

박소란

2009년 《문학수첩》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 『한 사람의 닫힌 문』, 『있다』, 『수옥』을 냈다. 신동엽문학상, 내일의한국작가상, 노작문학상, 딩아돌하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 외곽 한 작은 빌딩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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